
최근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은 많은 논란과 함께 의료계뿐만 아니라 교육계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당사자인 대한의사협회는 새로운 회장 선출과 함께 ‘국민 생명 담보로 러시안 룰렛’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교육계와 이공계에서는 ‘사교육 광풍과 이공계 블랙홀을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반면 한 언론에서 진행한 의대 증원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의대 정원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11%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국민의 생각 역시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라는 큰 그림을 내세우며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 중 하나였던 의료 인력의 중요성과 그 부족함이 얼마나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강조하며 의대 정원 증원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수의사 커뮤니티에서는 의대 정원 증원이 수의대 증원으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수의대 정원의 조정 가능성과 그에 따른 동물의료계의 변화는 수의사와 곧 다가올 미래일지도 모른다.
이에 이번 칼럼을 통해 의대 정원 증원 결정이 동물의료계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수의대 증원의 가능성을 탐색해보며, 이로 인해 수의사와 예비 수의사들이 직면할 수 있는 변화와 기회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보고자 한다. 이번을 계기로 동물의료계가 현재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의 도전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 하반기부터 의대 증원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고, 1월 14일까지만 해도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는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불과 4일 만인 지난 1월 18일 대통령실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정부와 의사협회 간의 대립이 표면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의대 증원의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27년간 묶여 있었던 반면 영국과 프랑스 등 인구당 의사가 많은 국가는 우리보다 먼저 더 많이 정원을 늘리고 있다. △2035년이 되면 우리나라 의사는 5만 명 부족해진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국민 1,000명당 6명으로 OECD 국가 중 끝에서 두 번째이며 증원해도 2.3명 수준이다. △여론도 대부분 찬성이고, 필수의료 국가도 2028년까지 10조 이상 투입해 개선하겠다.
반대로 의사협회에서는 의대 증원을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의사협회에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 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결국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다. △대학병원 지원을 통한 필수/지방 의료 활성화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2,000명이 늘어날 경우 교육 인프라가 감당하지 못한다. 이미 카데바 1구당 학생 10여 명이 실습하고 있는데 50% 이상 증원 시 실습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난 2월 말 허주형(대한수의사회) 회장은 강원도수의사회 정기총회에서 “의대 정원을 2,000여 명으로 늘린다면 우리나라 이공계열들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사태”라고 말했다. 최근 대수회는 산업동물 수의사 부족 문제의 대안으로 농장전담수의사제도와 농장거점동물병원 신설을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산업동물 수의사의 삶의 질은 어느 정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항상 사람이 부족하다는 수의직 공무원도 강원도에서 신규 임용 급수를 6급으로 올리고, 검역본부에서 전국 수의대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으나 파격적인 처우 개선이 아닌 이상 신규 수의사들의 진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의대 정원 이슈는 정부에서 ‘지방 의료 및 필수 의료 개선’을 목적으로 증원을 주장하고 있는데, 수의사에 대입해보면 ‘산업동물 수의사 및 공직 수의사 부족’을 주장할 수 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가 OECD 국가 중 가장 적다고 정부가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처럼 그동안 많은 언론에서 ‘산업동물 수의사 부족’을 다뤘으며 이미 작년 3월에 농식품부에서 ‘수의사 수급 현황 및 전망분석’ 연구용역을 의뢰한 결과 산업동물 및 공직 수의사가 부족하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밀어붙인다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했을 때 감염병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공공의대 설립을 국회의원들이 주장한 것처럼 부족한 분야의 수의사 배출을 위한 공공수의대 설립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반려동물 임상 쪽으로 시선을 전환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임상의는 포화를 넘어 과포화라는 데이터가 존재하고 건강보험이 있는 사람 의료와 다른 동물 의료체계, 비싸다는 동물병원 진료비가 실제로는 OECD 최하위권이라는 데이터가 있음에도 동물병원 관련 기사가 포털에 올라오면 대부분의 댓글이 ‘동물병원 비용이 비싸다’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이미 김포시에서 공공동물의료센터를 전 시민 대상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총선 전 표심을 얻기 위해 여러 후보가 ‘공공동물병원’, ‘동물보건소’를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공동물병원 뿐만 아니라 ‘동물병원비가 비싸니 반려동물 임상의를 더 늘리면 경쟁으로 진료비가 하락할 것이다’는 근거로 정부가 수의대 신설을 충분히 추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수의사가 과잉공급된 우리나라와 다르게 미국은 수의사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달 미국수의과대학협회(AAVMC)가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고 있지만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더 적은 근무시간을 원하기 때문에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 번아웃으로 인한 수의사 직업의 포기 등으로 인해 2030년 초까지 매년 1,600명 더 배출돼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만약 수의대가 신설된다면 기존의 수의사들과 예비 수의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건국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이 4~50명의 정원인 것으로 보아 신설되는 수의대 역시 50명 정도로 예상된다. 단순히 졸업생은 무조건 농장동물 수의사와 공직 수의사로만 진출해야 하는 조건을 걸지 않는 이상 지금처럼 졸업생 중 대부분이 반려동물 임상으로 몰릴 것이고 저년차 수의사의 임금 하락과 동시에 구직의 어려움도 예상된다. 또한 농식품부의 진료비 게시 항목 확대에 따라 더욱더 늘어나는 동물병원의 가격경쟁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대수회 역시 의사협회의 선례를 기반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수의대 신설을 최대한 반대하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전체적인 숫자는 동일하게 유지하되 기존 수의대의 정원을 가져오는 방법 등 여러 방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또한 몇몇 언론이 의대 정원을 늘렸던 일본, 영국, 독일 등 다른 국가의 사례를 다룬 것처럼 수의대 정원을 늘린 국가가 있다면 어느 기간 동안 어떤 방식으로 늘렸는지 조사해서 합리적인 방안을 하나의 카드로 사용해야 한다.
이번 의대 정원 증원 이슈가 더 이상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길 바라며 향후 비슷한 이슈가 동물의료계에서도 발생함으로써 피해 보는 동물들과 보호자들이 없길 바란다.
※ vetfi.org에서 전체 원문 읽기 가능, 수의미래연구소 [벳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