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로서 우리는 매일 수많은 생명을 돌보며, 때로는 그 생명들이 우리의 손을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집니다. 이러한 순간들은 단순히 직업적인 실패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상실로 다가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나?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며,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이런 감정들을 억누르려고 해도, 결국 그것들은 쌓여서 나를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주치의로 14년간 돌봐온 Lewis라는 진도개가 있었습니다. 수차례의 수술과 치료를 거듭했지만, 결국 어제 암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내 친구이기도 했던 보호자의 눈물을 보며 그를 위로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지만, 정작 나는 그를 위로할 힘조차 없었습니다. 마치 내가 Lewis를 살리지 못한 죄인처럼 느껴졌고, 모든 게 내 잘못 같았습니다.
많은 수의사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합니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15년까지 약 400명의 수의사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는 충격적인 통계지만,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매일 죽음과 마주하고, 보호자들의 슬픔을 떠안아야 하는 이 직업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소모적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의사들은 일반인보다 자살 충동을 느낄 확률이 두 배 이상 높고,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하는 비율도 일반인보다 2.7배 높습니다. 이 수치들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무게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든 숨기려 합니다. 동료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어 합니다. 수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원래 그렇다고,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국 우리 자신을 해칠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그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주변 친한 수의사들 혹은 선후배들과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하는 대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전문적인 상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나 역시 한때는 상담이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비로소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많은 수의사들이 상담을 꺼려하는 이유는 '전문가가 되어서도 이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담은 우리의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고, 직업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동물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의학적 한계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동물들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우리가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우리의 노력 자체가 그들에게는 충분한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수의사로서의 삶은 그 자체로 보람차지만, 동시에 무거운 부담을 안고 가는 여정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자기 돌봄을 실천하며, 우리의 정신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돌보는 동물들과 보호자들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적 건강이 바로 우리 직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