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서 반려동물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제공을 의무화하는 수의사법 개정이 규제혁신 과제로 확정되었습니다.
정부는 동물진료부가 공개되면(열람 또는 사본 제공), 국민의 알권리 보장, 동물의료 투명성 강화, 반려동물 양육자의 동물병원에 대한 불만 해소를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의사로서 이러한 법 개정에 대해 깊은 고민과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동물의료 투명성 강화라는 목적은 충분히 이해되며 보호자의 알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진료기록의 공개가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되어 동물의 건강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특히 진료기록이 무조건 공개되는 경우 자가진료의 증가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재도 많은 보호자들이 인터넷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자가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동물의 상태를 악화시키거나 심각한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질 위험이 큽니다.
진료기록이 공개되면 자가진료 시도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반려동물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동물진료는 동물이 말로 표현을 못하는 만큼 각종 검사를 통한 종합적인 판단을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단순한 기록만으로는 전체적인 치료계획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기록이 왜곡되거나 일부만 발췌되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보호자들이 진료 기록을 잘못 해석해 불필요한 불만을 제기하거나 의료진을 불신하는 상황도 우려됩니다.
수의사법 개정 이전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점은 동물의 자가진료를 막고, 수의사의 처방권을 존중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행법상으로도 농장동물의 자가진료가 합법이며,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진료 또한 성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진료기록이 공개된다면 이러한 자가진료의 부작용은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진료기록 공개가 의무화되기 전에 자가진료를 엄격히 규제하는 법적 장치가 먼저 마련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이와 같은 우려를 일부 인식하여 의료사고 확인 및 보험금 청구와 같은 일부 목적에만 기록 제공을 제한적으로 의무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긍정적인 신호지만, 자가진료 및 약품 오남용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없는 상태에서 진료기록이 공개되면 결국 수의사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수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반려동물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는 보호자의 알권리와 투명성 강화를 위한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으나, 자칫 동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수의사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기 전에 자가진료 규제와 수의사의 전문성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