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일 원장 칼럼⑫] 동물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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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일 원장 칼럼⑫] 동물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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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02호] 승인 2025.08.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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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동물병원, 국가의 수의료 개입과 수의사의 역할

우리나라에서 수의료는 오랫동안 민간의 책임과 시장의 자율성에 맡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일부 지자체가 추진한 공공동물병원 설립은 동물복지의 관점에서 국가가 수의료에 개입해야 하는지 여부를 둘러싼 중요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저소득층 가구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우 예방접종이나 기본 진료조차 부담이 되어 치료를 포기하거나 심지어 유기동물 발생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보아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어디까지 수의료에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동물복지와 공공성의 균형을 이루며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 과제가 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와 사회가 수의료에 개입하고 있다. 미국의 AlignCare 모델은 대학 수의과, 민간 동물병원, 사회복지 기관이 연계하여 저소득층 가정의 반려동물에 대한 진료비 보조, 예방 진료, 중성화 수술을 제공한다.
동물의 건강이 곧 가정의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관점에서 수의료와 사회복지를 연결한 One Health적 접근이 특징이다. 영국의 PDSA는 10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비영리 공공수의료 모델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 또는 저비용의 진료를 제공하며 전국적으로 40여 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 지원뿐 아니라 기부, 유산, 자선 판매점 수익 등 다양한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단순 치료를 넘어 예방과 교육 중심의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대륙의 여러 국가에서는 지자체 단위에서 유기동물 진료와 복지에 공적 예산을 투입하며, 보호소 수의료 서비스를 공공수의료의 중요한 한 축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국가 개입이 단순히 시장 침해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동물복지를 실현하는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방향으로 정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아직 공공수의료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 일부 지자체가 시범적으로 공공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나 법적 기반과 재정 구조가 불안정해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 공공동물병원을 성급히 확산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국가가 공공수의료에 개입하려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법적 근거와 재정적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수의료 기본법(가칭)’을 제정해 국가 개입의 범위와 원칙, 수의사의 역할, 재정 지원의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하며, 재원은 복권기금, 임팩트 투자, 민간 기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다. 동시에 동물등록제 강화와 등록예치금 제도를 도입해 사망이나 양도 시 말소를 의무화하고, 미등록에 대한 과태료 처분을 강화한다면 유기동물 방지와 재정 확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이러한 틀 안에서 국가의 공공수의료 정책이 자리 잡아야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며, 수의사와 민간 병원도 제도와 보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공공수의료의 설계와 운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의사의 주도성이다. 국가 개입은 불가피하지만 수의사가 배제된 채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현장의 실정과 괴리된 정책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수의사회는 해외 사례를 근거로 정책 제안, 운영 가이드라인 제시, 윤리적 기준 확립 등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를 통해 공공수의료가 민간 진료와 충돌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체계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공공동물병원으로 촉발된 국가의 수의료 개입 문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개입의 범위와 방식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가가 수의료에 개입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바우처 제도, 저소득층 대상 지원 프로그램, 동물등록 기반 재정 마련 등 여러 대안이 있으며, 공공동물병원 역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식이 아니라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으로 연구된다면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 해외 사례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적 현실에 맞는 제도를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의사가 반드시 중심에 서야 한다. 수의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때 공공수의료는 민간과 공공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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