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의료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데 반해 동물병원 규제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수의사들의 자율성과 수의료 혁신을 퇴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지원은 고사하고 수의사의 목소리도 반영되지 않은 채 오로지 보호자들의 권익과 알권리만을 내세워 수의사를 옥죄는 규제들만 나오다보니 그 책임과 부담은 오롯이 수의사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는 수의사의 자율성과 경쟁력만 위축시키고 수의료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나 동물진료는 인의처럼 공보험이 없고, 공공재가 아닌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있음에도 정부가 민간 분야인 동물진료비에 표준수가제 도입을 운운하며 수의료 시장에 개입하려는 의도는 분명 잘못된 행위이다.
동물진료비는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부가가치세를 내고 있지만 부가세 부과분에 대한 환원이 없을 뿐만아니라 진료비에 대한 소득세 공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어 최소한의 사회적 배려는 물론 정부 지원도 없는 실정이다. 서비스업으로 분류해놓고 책임과 의무는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수의료 시장에 개입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납득할 수 없다.
과거 의료영리화를 추진했던 정부가 이제는 소비자 보호를 내세워 영리법인 병원의 개설을 제한하고, 진료비 공시·게시 의무화, 표준수가제 도입 등의 규제 강화에 몰두하고 있어 이젠 오히려 동물병원에서 영리법인 허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현행 수의사법에서는 영리법인의 동물병원 개설을 금지하고 있다. 2013년 법 개정으로 10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지면서 2023년까지 모든 영리법인은 비영리나 개인사업자로 전환했다.
법 개정 당시 개원가 분위기도 영리법인을 반대했기 때문에 의료 상업화의 차단이라는 성과로 높이 평가했다.
대자본의 무분별한 확장과 시장 독과점, 해외자본 유입 우려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되레 정부가 공공동물병원 확충과 표준수가제 도입 등을 들고 나오면서 개원가와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다.
지금처럼 동물병원 간 경쟁이 극도로 심해지고, CT·MRI 등 고가 장비 도입과 병원의 대형화로 규모의 경제만이 살아남는 상황에서는 개인사업자인 동물병원들이 아무리 열심히 진료를 본다고 하더라도 경쟁에서 이겨낼 방법이 없다.
대형화된 병원들 역시 매출은 높지만 수익구조가 형편없다는 볼멘 목소리들이 나오는 실정이어서 오히려 수의료 영리화가 된다면 진료비에 대한 규제나 억압 없이 자본을 통해 자율성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만 보더라도 영리법인을 허용하면서 대규모 자본을 끌어들여 몇 천 개의 동물병원을 네트워크화 하는데 성공하면서 수의료를 비롯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견인하고 있다. 즉, 의료영리화가 된다면 최소한 개개인이 매출과 수익을 비롯해 정부 규제까지 모두 감내해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는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불행히도 법 개정 당시 영리법인 금지가 결국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일부의 예측이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수의료 시장의 성장은 결국 자본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개인사업자인 동물병원에 투자할 수단이 전혀 없다는 것은 성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계속해서 민간시장인 동물의료에 자꾸만 공공의 잣대를 들이대며 과도한 진료비 편차를 이유로 진료비 표준화 도입 등 규제를 강화하고, 수의사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면 어쩌면 영리법인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먼저 규제 해법 마련을 위해서는 수의계 내부적으로 컨센서스 형성을 위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