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항 원장의 임상일기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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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항 원장의 임상일기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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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0호] 승인 2014.07.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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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동물병원 경영학 강의를 하면서 가끔 사용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임상이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이다. 여러 가지 답변이 나온다. 수의학 지식을 이용하여 사회봉사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사람도 있으며, 임상을 할 생각이 없어서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전, 임상이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들보다 한 계단 앞서 있다고 해도 한눈 파는 순간 바로 남들과 같은 위치이고, 한 걸음 걸어 올라가면 제자리이며, 계속해서 걸어야, 늙어서 이 직업을 그만 둘 때까지 계속 정진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수의학은 현재까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완벽을 기하기 위해 수많은 학자와 교수, 학생, 임상가들이 노력하고 있는 학문이다. 오늘까지 좋았던 치료법도 내일이면 더 나은 방법이 나올 수 있고, 오늘까지 옳다고 믿었던 내용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더 한걸음, 한걸음씩 움직여야 되는 것이라 말한다.

또한 임상의 [임]자는 닥칠 [임]자이고, [상]자는 서로 [상]자 이다. 즉, 닥치면 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 해결할 수 있게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롱이라는 치와와 암놈이 골반골절로 내원했다. 보호자와 집근처로 산책을 나갔다가 오토바이에 사고를 당한 것인다. 일반적으로 골절 시술을 해야 하는데, 당시만 해도 동물용 수술기구 및 소모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없어서, 일단 가지고 있는 핀 중 가장 작은 사이즈를 숫돌에 갈아 적정 크기로 줄이고, 스크루핀을 잘라내어 스크루를 대신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 카센타 사장님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랜저 공임비보다 티코 공임비가 더 비싸다고 한 말이다(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왜냐고 물으니 티코는 손이 들어가지 않아서 수리시간이 더 걸린다는 게 이유란다.

다행히도 요롱이는 수술 후 정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새끼도 3마리나 낳았다. 헌데 이 녀석의 새끼 사랑이 장난이 아니다. 지는 눈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말랐어도 5개월까지 젖을 물리고, 똥, 오줌 다 받아주고, 새끼들이 밥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음식 먹고, 수시로 핥아주곤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도 새끼들을 달라고 해서 보호자가 아기들을 분양한 후로는 요롱이가 7일 넘게까지 굶고 울고 시름시름 앓았다고 했다. 차선책으로 다시 새끼를 갖기로 했고, 몇 개월 후 계획대로 임신을 해 예쁜 아기 2마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출산 예정일 하루를 앞두고 또 사고가 났다. 이번에도 산책 나갔다가 차에 치인 것이다.

나는 수의사다. 그것도 임상수의사다. 임상수의사는 상황에 있어, 냉철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 때 만큼은 머리속에 감정을 넣어서는 안 된다. 요롱이를 살펴봤다. 폐의 출혈로 의심되는 코피가 나오고 있었고, 호흡은 약하고 힘이 없었다. 체온은 계속 낮아지고 있었으며, 쇼크로 인해 의식은 없었고, 동공 빛 반사도 거의 없었다. 뇌 손상도 의심되었다.

아직 태아는 살아 있었지만 심박이 느려지는 것으로 보였고, 에미인 요롱이는 가망이 거의 없었다. 5분정도 버티면 정말 잘 버틸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호자는 새끼는 살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때 갑자기 요롱이가 ‘으~응’하는 소리를 내면서 보호자를 쳐다봤다.  마치 무슨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처럼....그리고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보호자는 천천히 말을 떼었다. ‘수술해 주세요, 산모가 가망이 없다면 자식만이라도 살려보고 싶네요. 워낙 지 새끼를 아끼던 에미였으니 요롱이도 그걸 원할 거에요,’
바로 산모가 사망할 것이기에 국소마취만 하고 재빨리 제왕절개 시술에 들어갔다. 난 수술 중에 분명히 요롱이가 사망할 것이라고 봤다. 한 5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으니까.

응급 수술로 새끼들을 꺼내는데 6분 남짓 걸렸다. 새끼들은 다행히도 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제 봉합하는 일만 남았는데, 산모의 상태가 더욱 좋지 않다. 한 바늘, 한 땀을 뜰 때마다 요롱이가 마지막 호흡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호자에게 요롱이와 새끼들을 보여드리는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요롱이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온몸에 힘을 다 쏟아 붓듯이 요롱이는 새끼들을 한 번씩 매우 힘들게 핥는 시늉을 하고, ‘휴’하는 애잔한 숨과 피를 토해내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마치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버.티.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요롱이는 새끼가 아니었으면 벌써 사망했을 것이다. 많은 강아지를 수술하고 치료해 보았다. 많은 강아지를 살려보기도 했다. 또 그만큼 많은 강아지의 죽음을 보기도 했다. 강아지가 죽기 전에 잠깐 반짝하고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사람도 명을 다할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이를 회광반조라고 한다. 하지만 5분도 넘기기 힘든 강아지가 30분 가까이 버티는 것과, 두 번씩이나 반짝하는 증상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수의학 교과서에는 없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답은 책이 있지 않을 것이다. 바로 에미이기 때문이다. 에미의 지.독.한

캐비어동물메디컬센터 권영항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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